죽음에 이르는 병 이란 책에서 말하고 있는 죽음이란 그리스도교적인 영원한 생명의 상실을 뜻한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절망을 뜻한다. 키에르케고르는 많은 저작 중에 가장 정연한 논리로 만들어져있고 영혼 호소의 열정이 느껴진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 희망이 가진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이다.
1. 쇠렌 오비에 키르케고
르 죽음에 이르는 병은 덴마크의 사상가 키에르케고르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책 부제로 건전한 덕과 각성을 위한 그리스도교적 심리학적 논술이라고 적혀있는 것처럼 그리스도교 신앙을 권장하기 위안 의도로 만들어졌다. 때문에 저자 이름은 안티 클리마 구스라는 가명을 사용했는데 자신이 되지 못한 충실한 신자를 가상의 인물로 내세운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내용을 의도하고 만들었으나 인간론에 대한 내용도 이론적으로 말하고 있다. 철학 저술로 높이 평가되어 일찍부터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번역되었다. 특히 실존주의 철학자와 문학가, 변증법적 신학 계동의 신학자와 목사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하며 설득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란 절망 그 차제이다, 절망은 죄이다는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의 제목은 이 병은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는 그리스도의 말에서 유래하였다. 애초에 차기작으로 구상된 그리스도교의 수련을 함께 읽는 것이 좋다.
2. 육체의 생사를 초월한 가치
키에르케고르에게 인생의 최대 관심사는 자신이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과, 그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진실을 발견하고 그것의 신조로 삼아 생활하는 것이다. 이 길에 자신의 희생하는 모습은 그가 말하는 '실존' 이었으며, 이 관심에 대하여 타성적인 자신의 생을 스스로 대처하게 하는 것 이야말로 주체적인 자신의 인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초월해 가치 있는 것의 존재를 믿으며 그 희망에 목숨을 걸로 육체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적이라고 말한다. 키르케고르에게 그 희망은 그리스도가 말하는 '영원한 생명' 이었다. 때문에 아무 희망도 없이 영원한 생명에 의존하여 살아가지 않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적으로 살아가는 생이란 한순간 한순간이 살아있는 시체 같은 삶이며, 설령 그러한 생이 일반적 의미에서 희망으로 가득 차 있고, 영광으로 빛나는 것일지라도 실은 인간적으로 절망이며 비참한 죽음을 의미했다. 반대로 그런 희망이 있으면 '"죽음조차도, 나아가 지상의 현세적인 고뇌와 곤궁, 비참함, 병, 재액, 고통, 가난, 번민, 비애, 우려 등으로 불리는 그 모든 것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 결코 아니라는 점은 두말할 것도 없다"라고 했다. 요한복음 제11장에는 병으로 죽어가는 라자로에게 '부활한 생명'인 그리스도가 다가와 '이 병은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그를 소생시키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 같은 주제를 앞에서 절망적 인간의 모습에 대한 임상적 고찰로 말하고 있는 것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 , 곧 절망에 떨어지는 인간에 대한 생태 고찰로 인간 심리의 심연까지 파고들어 그를 통찰하고 그런 심리가 의미하는 내용을 근사하게 정리해 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절망론의 백미라고 불리며, 키에르케고르의 철학 저술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절망론은 고찰하는데 키에르케고르 가 중심으로 잡았던 핵심은 자신의 독창적 개념인 '자기 자신'이었다. 이는 현대의 실존주의에서 주체적 인간론 또는 주체적 자기의 원형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이지만,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인 것은 아니라고 키에르케고르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무한과 유한, 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 자유와 필연의 종합이며 또는 종합이라는 관계'라고 했다. 키에르케고르 가 말하는 종합이란 관계는 자신이 현재 처해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저절로 평형과 평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종합 관계에서는 그 같은 일치하지 않는 것을 자각하며 현재의 자신을'보다 나은 상태가 되기 위해 애쓰도록 촉구' 한다. 인간이 지금 자신의 처지에 대처하면서 간단히 현재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허용하지 않고 자신이 만든 종합 관계를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자신이 실현한다는 제2의 관계, 즉 스스로 평형과 형안 한 상태에 놓여 있는 인간이 되고자 하는 관계를 성립한다. 이를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관계를 위하여 활동하는 주체는 '자기 자신'인 것이다. 이처럼 인간이 그때마다 스스로 종합 관계에 대하여 반성하고 변혁적으로 대처하는 '자기 자신'이라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인간 스스로가 정한 것이 아니라 제3자(신)에 의해 정해진 관계라서 인간은 스스로와의 관계하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인 동시에 제3자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근데 절망이란 자기에 관한 이중, 삼중의 관계에서 오는 모든 형태의 불일치, 다른 말로 하자면 착오 관계와 같은 것이다. 이런 이유로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에 대해 "이 병에 걸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인간이 동물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로 절망이란 최대의 불행이자 비참함일 뿐 아니라 타락인 것이다."라고 말하며, "절망은 전적으로 변증법적이기 때문에 단 한 번이라도 여기에 걸리지 않는 것 또한 최대의 불행이다. 따라서 그 병에 걸리는 것은 '신의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병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병에 걸렸더라도 치유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병 또한 가장 위험한 병이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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